이번 추석무렵 담양 천주교 공원묘역의 선친 묘소에 갔다가 옆에 놓인 작은 팻말을 보았다는 동생의 연락을 받았다.
연락이 되지 않은 묘주에 대해 벌초비용(관리비) 납부를 안내하는 팻말이었다.
내가 들렀을 때에는 발견을 못했었는데... 그만큼 내가 무심했었나보다...
선친이 1991년에 돌아가셨으니 벌써 3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당시 막 조성되기 시작한 담양 천주교 공원묘역에는 이미 외삼촌께서 본인 명의로 친지분들 몫 여러개의 묘소를 미리 입양받아 놓은 상태였고, 정식 사용기간은 20년으로 안내받았었다. 즉, 묘소에 모신 뒤 20년이 지나면 이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2005년 모친께서 뇌경색이 악회되어 위독하자 나는 공원묘역에 신규 조성된 부활의 집(납골당)을 부모님, 우리 내외, 동생 내외와 누나들 몫으로 8개 분양받았고, 그해 돌아가신 어머니는 당연히 납골당에 모셨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제수씨도 그 해 여름 꽃처럼 젊은 나이에 갑작스러운 암 발병으로 투병하다가 3개월만에 사망해서 어머니 옆에 안치했다.
그동안 성묘를 갈 때마다 느꼈던 아쉬움은 매 해 갈수록 커졌었다.
날이 갈수록 납골당에 많은 분들이 입주(?)하면서 차분하게 고인을 추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짐에 따라 성묘를 가면 부활의 집은 잠깐 들러 연도만 총총히 기도드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선친 묘소앞에 둘러앉아 보내면서, 이장을 하면 이나마 따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유도 없어질 것 같다는 염려를 하곤 했었다.
그리고 왜 20년이 훨씬 지났는데 선친 묘소의 이장을 요구하지 않는지... 우리가 먼저 이장을 추진하지 말고 버틸 수 있는 최대한 그대로 분묘를 유지하자는 얘기꽃을 피웠었다.
이번에 공원묘역 관리소와 관리비 납부문제로 연락하면서 한편으로는 황당하면서도 오히려 일이 잘 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소에는 봉안 후 20여년이 훨씬 지났는데, 선친 묘소의 고인 및 묘 소유주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고 수년째 확인이 안되어 무연고 묘소로 처리될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헉~~~!!!
알고보니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을 수작업으로 관리하였던 시대인데, 외삼촌께서 부모님 묘소 2기만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양산동 묘역으로 모실려고) 계약해지하는 과정에서 착오(?)로 모든 정보가 통채로 말소되었고 전산화 목록에서 누락되었다는 것이다. 관리소에서는 나름 옛날 보유했던 정보에 입각하여 열심히 연락을 했다는데, 이미 고인이 되신 외삼촌에게 연락이 닿을리 없으니 자연스럽게 무연고 묘소처럼 방치된 것이었다.
다행스럽게 정말 오래되어 잊고 있었던 모친의 30년 전 '묘지사용승락서' 원본(계약해지 시점에 타자기로 쳐서 발부된 것으로 추정됨)을 온 집안을 뒤져 찾았고 그 정보에 따라 선친 묘소의 고유번호를 알아내고 협의를 거쳐 선친 묘소와 모친 묘자리를 내 앞으로 등록하고 모든 정보를 Update할 수 있었다.
또 한가지는 선친이 계신 해당 묘역이 초장기 조성된 구역으로써 20년 사용기간과 무관하게 관리비만 납부하면 영구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어머니도 아버지 옆에 모셨을 것을~~~ 아마도 아버지가 자식들, 손주들이 만나러 오면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얼굴을 보려고 힘쓰셨나보다...!!!
정말 항상 마음속을 짓누르던 조만간 이장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성묘때마다 느꼈던 아쉬움 등의 짐이 없어졌다.
그리고 어머니 묘소는 비상시에 대비해서 계약해지를 하지 않고 보유키로 하였다.
와이프도 내 생각에 동의하면서 너무 잘 풀렸다고 다행이다고 맞장구쳐 줬다...^^
동생도 전화로 결과를 알려주니 "형, 고생했네... 좋네..." 소리를 연발했다.
가끔 나는 죽으면 들어갈 집에 대한 생각을 한다.
내 후손들이 나를 기억하고 만남을 가지며 함께 얘기할 기회를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는 납골당 보다는 개별 묘소가 나을 것 같고 가능하다면 수목장도 좋지 않을까... 마치 손주들이 할아버지 집에서 뛰어 놀기에는 번잡한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이 좋은 것처럼 말이다.